마음 속 작은 나무
-‘나무’를 읽고-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옛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었다. 단지 ‘나무’ 라는 이름만으로도 할아버지께서 가꾸시던 감나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우리 엄마가 유치원 다니시던 시절에 감나무는 새로 지어진 집과 함께 땅 속에서 새 출발을 기약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걸어 다니고 말을 할 수 있었을 적부터 나는 유독 그 감나무에 눈길이 갔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난 항상 그 나무와 눈짓으로 인사했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심심할 때면 정원으로 신발도 안신은 채 뛰어나가 할아버지의 감나무 아래에서 놀곤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나무에게 물을 주기도 하고 감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만져보기도 하고... 더욱 생생한 기억은 할아버지께서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아래로 떨어뜨리면 내가 그것을 바구니로 받았던 것이다. 그 때마다 할아버지가 감나무에서 떨어지시면 어떡하나 하고 가슴 졸이던 것이 생각난다. 감을 다 따기 전에, 할아버지께서는 나무 맨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감을 까치밥이라고 하며 남기시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까치도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듯 날아와 감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감을 쪼아 먹곤 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쯤, 할아버지께서 이사 가시는 바람에 나와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해왔던 감나무는 새로운 집 주인에 의해 사라져 버렸다. 감나무를 뽑을 때, 그 감나무는 뿌리가 깊어서 잘 안 뽑혔다고 한다. 게다가 하늘을 치솟듯 웅장하니, 더욱 뽑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정들었던 감나무가 이젠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난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없애는 기술, 그런 과학의 발달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내가 그만큼 정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나 다를 바 없는 감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이러한 나의 경험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무에게도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난 다시 수많은 감이 열린 내 친구, 감나무를 떠올려 보았다. 과연 나의 감나무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 눈 앞에 그 감나무가 어렴풋이 보일 때마다, 나는 감나무와 아직도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내용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책 속의 작은 나무 이야기가 꼭 감나무의 어린 시절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작은 나무가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모습이 내 감나무의 어린 시절 일뿐더러, 마치 나의 삶 같이 느껴졌다.
작은 나무는 밤송이를 얻기 위해 수차례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만 했고, 그 역경 속에서 작은 나무는 뿌리를 내림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성장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성장하기까지에도 수많은 어려움이 잇따랐었다. 특히, 대부분의 어려움은 부모님의 충고를 잘 듣지 않아 따르게 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내가 왜 그랬을 까 하는 후회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후회감이 점차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반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반성함으로써 더 발전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나 지나친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은 적도 있다. 몇 년 전, 나에게는 햄스터 2마리가 있었다. 햄스터에게 매일 먹이를 주고 지켜보는 가운데, 햄스터에 대한 나의 사랑은 커져만 갔다. 그 사랑이 점점 커지다 못해, 마침내 욕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햄스터가 얼른 새끼를 낳아서 햄스터를 좀 더 많이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먹이를 주게 되었고 결국, 두 마리 모두 다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던 햄스터가 한 순간 나의 욕심으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스스로 욕심을 자제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아무리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해도 그 지점에서 멈추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과한 사랑은 추악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속의 작은 나무도 장마철 때, 자신의 첫 열매들을 다 잃고 싶지 않아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엔 절반도 넘는 열매들을 잃게 되었다. 그런 작은 나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욕망도 포기할 줄 알아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은 나무도 자신의 욕심을 버린 끝에, 마침내 두 개의 밤송이를 익히는 기쁨을 맛 볼 수 있었으리라. 작은 나무가 밤송이를 익히는 장면에서 무언가를 해내었을 때의 기쁨, 하지만 그 때가 바로 시작인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나의 감나무도 이러한 순간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감나무는 나와 처음 대화를 했을 때부터, 나를 기억하고 더욱 열심히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많이 맺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아직까지도 그 감나무가 살아 있다면,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열매를 많이 맺어 줬던 것이 나를 생각해서였니?” 라고 뻔한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침묵을 지키던 감나무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위해서 그 수많은 열매를 떨어뜨렸겠어?”
그 후, 나는 아마 감나무의 굵은 몸통을 두 팔을 벌려 껴안았을 것이다.
책 속에서의 작은 나무가 그의 첫 친구를 만나게 되었을 때처럼 감나무도 흐뭇해 하겠지?
이 책은 나에게 감나무에 대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고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조언을 알려 주었다. 책이 알려준 것만큼 앞으로도 인생에 있어서의 뿌리를 깊게 내려가야겠다.
글쓴이
도토리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