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학기 초‘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읽고 흠모하게 된 그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해본 보고서이다. -
빛과 그림자,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거장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을 읽고. 글만으로 느낄 수 없는 건축물의 감촉과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싶어서 대한민국에 있는 그의 작품을 조사했다. 제주도에 ‘지니어스로사이’, ‘글라스 하우스’, 그리고 ‘본태박물관. 마지막으로 원주에 오크밸리 리조트에 ‘뮤지엄 산’까지.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장소 하나하나에 감탄할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첫 번째 일기, 지니어스로사이.
7월 25일 여름, 이른 아침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도. 책과 사진으로만 보던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밤잠도 설치고 제주도 땅을 밟았다. 수많은 볼거리를 자랑하는 제주도. 가장먼저 방문한 곳은 섭지코지 옆에 위치한 ‘지니어스로사이’이다. 처음에 ‘지니어스로사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또 무엇을 위해 지어진 곳인지 감이 오지 않았었다.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박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따라 올라가보니 저 멀리 사진 속에서만 보던 노출 콘크리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도 다다오를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건축물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시선에 따라 건축물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는 단순히 벽처럼 보이던 긴 노출 콘크리트에 다가갔을 때, 나는 ‘지니어스로사이’가 지닌 이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라틴어로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의 ‘지니어스로사이’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제주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넓게 펼쳐진 땅위에 우뚝 솟아있는 ‘지니어스로사이’는 그 거대함과 달리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표를 구매하고 들어갔을 때, 천천히 감상해야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빨라지는 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의 건축은 하나의 선물 상자 같다. 포장지를 벗기면 그 안에 또 다른 선물 상자가 있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것은 바로 아름다운 정원이다. 제주의 삼다를 상징하는 정원을 각각 하나씩 배치하였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돌의 정원 및 여인의 정원, 바람의 정원까지. 이 정원을 들어가서도 건물의 정체를 쉽게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인상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가치를 곱씹으며 숨겨진 의미를 찾았을 때 비로소 관람객들은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이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 출신의 건축가가 이 정원을 꾸미기 위해 제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했을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좌우로 물이 흘러 내려오는 공간. 그 길 끝에서 나는 유채꽃과 푸른 바다 그리고 선산일출봉을 마주했다. 풍경을 예술 작품마냥 찍어 걸어 두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풍경과 멋진 구조에 사로잡혀 매료되었을 때,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자연을 주제로 한 3가지의 작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경원 작가의 ‘Diary’와 ‘어제의 하늘’ 그리고 ‘섭지의 오늘’이 바로 그것이다.
문경원 작가의 ‘Diary’는 나무가 피고 지는 짧은 영상물이다. 앙상했던 나무에 풍성한 잎사귀와 꽃이 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잎사귀는 떨어져나가고, 나무는 자연스레 다시금 앙상해진다. 이 작품은 나무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기획됐다고 한다. 나무가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이 우리네 역사와 닮아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시, ‘어제의 하늘’은 매일매일 녹화된 하늘의 이미지를 다음날 동일한 시간에 보여준다. 우리는 어제의 하늘과 마주하며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비단 지나간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여정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인 ‘섭지의 오늘’은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빔 프로젝트로 차가운 시멘트 외벽에 쏘아 만들어낸 성산일출봉의 풍경은 낯설지만 익숙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현재를 강고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이 장소는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관람하고 끝낼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이 공간을 창조한 사람의 의도를 알고자 천천히 걸으며 시선을 옮기다 보면 푹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 인 것 같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인파에 지친 삶을 짧게나마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일기, 글라스 하우스.
지니어스로사이를 보고 조금 걸어가면 글라스 하우스가 보인다. 정동향을 바라보고 지어진 글라스 하우스는 겉으로는 모던한 조형물처럼 보였다. 1층 바닥은 입구보다 3.6미터나 높은 곳에 위치해 앞으로 전개될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젠 이것이 안도다다오의 건축물의 특성이라도 되는 듯 당연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정면은 뒷면의 폐쇄성과 정반대로 전체가 유리로 마감되어있었다. 정동 방향을 향해 손을 벌린 기하학적인 평면의 모습은 마치 태양의 정기를 모으는 느낌을 받았다. 위층은 레스토랑이 위치하여 멋진 바다의 풍경이 함께 보였다. 아쉽게도 식사를 하진 못했지만, 정말 멋진 건물이었다.
세 번째 일기, 본태박물관.
하루가 지나 날씨가 더 무더워지고,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본태박물관이었다. 차에서 내렸을 때는 저게 박물관인가? 싶은 정도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계단을 올라가 티켓을 샀을 때도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뿐만 아니라 긴 한옥 담벼락이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제주 고유의 자연이 어우러지는 지니어스로사이와는 조금 달리 미술관이라는 목적에 더 충실하게 지어진것 같았다. 빛과 물이라는 소재를 기본으로 활용하고 전통과 현대 예술의 조화를 지향하는 본태 박물관의 이념을 담은듯 매끄러운 노출 콘트리트 터널 아래로 단아한 한옥 담벼락, 뻥 뚫린 천장에서 떨어지는 화사한 햇빛이 비추는 장관이 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 속에는 4개의 전시관이 있었다.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의 공예품들이 있는 1전시관을 지나 야외 물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백남준을 비롯한 현대미술품들이 전시된 2전시관이 보인다. 본태박물관의 본태는 ‘본연의 모습’을 뜻하는 이름으로 제주도 대지 위에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어 숨 쉬는 곳이었다. 평소 흠모하던 세계적인 건축가를 국내에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예술적인 감각과 철저한 계산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다채로운 감동에 온몸이 저릿했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방문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 일기, 뮤지엄 산.
뮤지엄 산에 가기 위해 원주로 떠났다. 차로 산을 올라가며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해발 275m의 산상에 위치한 뮤지엄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예술 거장들을 만남과 동시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감각을 활짝 열게 만든다. 뮤지엄 산에 들어가면 플라워 가을과 자작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있다. 붉은 패랭이꽃이 가득 피어있는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빛과 물의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그가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믿어지지 않는다. 그가 발로 뛰며 배우고 스케치하며 배운 건축인 것이다. 2005년부터 스케치를 주고받으며 지었다는 뮤지엄 산은 자연과 어우러지며 시시각각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물과 빛이 콘크리트를 배경으로 그리는 거대한 그림을 그가 예측하고 설계한 것에 경의를 표했다. 플라워 가든을 지나 미로 같은 길을 걷다보면 물이 일렁이는 길이 등장한다. 바로 워터 가든이다. 물결을 표현하기 위해 콘크리트 반죽을 다르게 하는 기법가지 이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페이퍼 가든과 스톤 가든을 관람하다 보면 그 특이하고 정교한 공예품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빛과 공간을 통해 내 시각과 사유가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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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S_yoon
